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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일기16

나의 고양이에게 #29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아홉 번째 인간 세계에 세상을 지키는 영웅들이 있다면 집사 세계엔 최첨단 고성능 고양이 경보기가 있다. 자신을 지키는 건지 나를 지키는 건지는 몰라도 현관문 밖에서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손쌀같이 달려 나가 문 밖 상황을 순찰하는 든든한 나의 냥보기! 쫑긋한 귀는 연신 움찔거리고 살랑거리던 꼬리는 언제 도망가야 할지를 가늠하듯 바짝 긴장한 상태. 자각하지도 못한 채 올라간 두 앞발. 하나야. 너 지금 두 발로 서 있어. 알고 있니? 하나에겐 큰일이 터지기 일보직전. 하지만 내 눈엔 웃긴 포즈 포토 타임. 찰칵! 없어서 못 먹는 과자통을 마구 흔들어도 끄덕 없이 문만 바라보는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웃긴 걸 어떡해. 별 일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나에게 돌아와.. 2023. 4. 13.
나의 고양이에게 #28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여덟 번째 바스락 부스럭 사각사각 달그락 조용하고 평온하던 집에서 이런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건 필시 '하나'가 무슨 일을 이미 저질렀거나 무슨 일을 저지르는 중이거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나한테 친절히 알려주는 신호라 할 수 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나가본 곳엔 서랍이 한껏 입을 벌려 속을 장렬히 다 비워낸 후거나 열심히 발을 놀려 속을 비워내고 있는 중이거나 이제 막 비워낼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의 뜨악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아주 꼭꼭 닫아둔 서랍을 도대체 어떻게 여는 거니? 내 손으로도 쉽게 안 열리는 걸 요 작은 발이 무슨 힘으로 열 수 있는 건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요 녀석! 하고 서랍을 닫으며 혼낼 준비를 하면 눈.. 2023. 3. 21.
나의 고양이에게 #26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여섯 번째 나에게 손이란, 그저 매일 사용하고, 자주 다치는 정도의 단순한 신체부위일 뿐이다. 그런 내 손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바로 하나가 내 손을 대하는 행동들을 보고 있을 때다. 별로 이쁘게 생기지도 않았고, 그럴싸한 큰 재능도 없는 내 손은 하나와 만나는 순간 그 이상의 것이 된다. 무한한 애정과 순종이 담긴 눈을 하고 다가와 내 손에 얼굴을 비비고, 내 체취를 음미하며 만족스러워하는 하나의 몸짓을 마주할 때. 내 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된다. 특히 잠들기 전 내 손바닥을 힘껏 누르는 하나의 발바닥과 만나는 순간은 가히 황홀할 정도라 말할 수 있다. 연한 내 손바닥 위에서 이뤄지는 꾹꾹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인한.. 2023. 3. 2.
나의 고양이에게 #24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네 번째 나의 고양이 '하나'로 인해 내가 특별해지는 순간들 내 손이 작은 머리에 닿기 전부터 귀를 뒤로 접은 채 가만히 날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 손가락 하나를 쭉 뻗어 가져가면 천천히 다가와 맞부딪히는 촉촉한 코와의 만남. 쭈욱 들어 올려 어깨 위로 착 얹으면 자동으로 편안한 자세를 잡으며 안기는 따끈한 몸의 무게.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위아래로 나를 살피는 심각하고 걱정스럽지만 그래서 더 웃긴 표정. 하기 싫은 일에 도망가고 싶어도 끝날 때까지 꾹 참아주는 대견하고 뿔통난 뒤통수를 바라볼 때. 짜증이 나서 날 할퀴고 물고 싶을 텐데도 내가 상처 날까 봐 결국 발톱을 숨겨주는 배려의 모습. 그래서 깨끗한 내 손을 볼 때면 늘 고마워. 찰나의 순간순간.. 2023. 2. 5.
나의 고양이에게 #23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세 번째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얻는 기쁨과는 별개로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들이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찾아오는 알레르기 증상들 재채기, 콧물, 눈물, 간지러움. 얼굴 한가득 묻어 절로 찡그려지는 털들. 검은 옷을 좋아하는 나에겐 분신 같은 돌돌이로 집 나서기 전 항상 털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운 시간낭비 언제나 조용히 내 뒤를 쫓는 작은 몸을 밟지 않기 위해 늘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하는 한 발짝. 기분이 좋다가도 느닷없이 성질내는 고양이의 비위 맞추기. 피곤해도 만족할 때까지 혼신의 몸짓으로 실감 나게 장난감 흔들며 놀아줘야 하는 격렬한 놀이시간. 혼자 잘 놀다가도 내가 뭐 하려고만 하면! 꼭 그럴 때만! 귀신같이 달려와 온몸으로 방해하는 고양이 물리.. 2023. 1. 29.
나의 고양이에게 #21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한 번째 다시 새로운 1년의 시작. 너는 이제 12살이 되었고, 더 사랑스러워. 나이 듦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안심시켜준다는 걸 너는 모를 거야 하지만 왜일까.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천방지축 말괄량이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조용하고 차분해진 널 보는 마음 한구석이 아릿한 건. 어느 날부턴가 매일 밤 나를 찾아와 머리맡에 눕기 시작한 너. 설핏 잠이 들기 전 내 숨을 확인하는 너의 촉촉한 코를 느끼고 있노라면, '아.. 너도 내가 걱정이 되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간다. 내가 너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처럼. 너도 나의 안위를 걱정할 거라는 것. 어쩌면 그런 생각에 잠 못 이룬 날이 너에게도 있었을 까봐. 왠지 뭉클한 마음에 내 손을 파.. 2023. 1. 4.
나의 고양이에게 #20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무 번째 내 손안에 담아도 자리가 남을 만큼 작은 몸은 200g을 겨우 넘겼다.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는 몸으로 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 철창에 매달려 울었었는지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처음 찾아간 동물병원의 원장님은 널 보자마자 눈썹을 늘어뜨리셨다. 그저 작은 너를 안쓰러워하는 줄 알았던 난 곧 들려오는 말에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이 아이는 얼마 못 살 거예요' 어미젖도 거의 못 먹고, 접종도 안된 거 같고. 이미 여러 가지 감염이 심해 살 날이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막연한 마음에 너만 바라보다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원장님을 설득하자 고민 후 하신 말. '몸무게부터 늘려야 해요. 최대.. 2022. 12. 21.
나의 고양이에게 #18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여덟 번째 나의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들 2 환기시키느라 열어놓은 창틀을 딛고 일어나 바깥 구경하기 햇빛 드는 이불 위에 편하게 누워 일광욕하기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화장실 탐방하기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틈새 공간을 바라보며 연구하기 막 건조기에서 들리고 나은 따끈따끈한 새 이불 보일러 돌아가는 바닥에서 찜질하다 일어나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 가끔씩 내가 불러주는 아무 노랫소리 이유는 모르지만 양치하고 나온 내 입 속 냄새 맡기 속이 비치고 바스락거리는 재활용 큰 봉투 장 봐오다 길가 화단에서 발견해 가져온 강아지품 숙련된 집사의 엉덩이 받침이 훌륭한 어깨 어부바 영화의 중요한 순간 기다린 듯 나타나 절묘하게 TV 화면 가리기 뚜껑이 열러 있는 건조.. 2022. 10. 21.
나의 고양이에게 #17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일곱 번째 동그랗게 말린 몸 움찔거리는 귀와 잘게 파닥거리는 작은 앞발 오물오물 무언갈 먹는 듯한 입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니? 궁금해 꿈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기를...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유일한 고양이 '하나'가 11살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산 시간보다 앞으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이 더 적겠구나..'라는 생각. 그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서 여기에 내 고양이 '하나'의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2022. 10. 18.
나의 고양이에게 #16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여섯 번째 어느덧 함께 산지 11년 이제는 자연스럽게 맞춰진 서로의 생활 리듬에 같이 눈 뜨고, 밥 먹고, 잠들다 보니 잠시만 떨어져도 허전함이 느껴진다. 내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나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채워주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한 나의 고양이 하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 이렇게도 마음 충만한 일이라는 걸 예전엔 알지 못했었는데 이 작은 존재로 인해 정말 다채로운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야속하기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끄러미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난 이게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됐다. .. 2022. 10. 14.
나의 고양이에게 #15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다섯 번째 출근할 때 닫는 방묘문 너머의 너를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바라본다. 어딜 가나며 종종걸음으로 내 발꿈치를 따라오던 어릴 적 너는 이제 없고 이젠 내가 어디를 가는지 다 아는 눈빛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내가 없는 너의 하루는 어떻까 너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잘 놀라는 네가 바깥 소음에 잠 못 들고 있는 건 아닌지 날 찾아 울고 있지는 않은지 불현듯 떠오르는 걱정들이 날 괴롭힌다. 늦은 귀가에 화가 난 너의 잔소리를 달갑게 들으며 그동안 참고 참았던 애정을 너에게 쏟아낸다. 마치 만날 수 없어 그리웠던 연인처럼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보는 널 보며 나도 내 불안함을 다독여본다. 매일 아침 너와 날 가로막는 문을 바라.. 2022. 10. 6.
나의 고양이에게 #14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네 번째 나의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들 1 바삭하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 치킨 트릿 얌체같이 콩과 당근을 골라내는 치킨 수프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굿모닝 고양이 키스 바각바각 절도 있는 리듬으로 춤추며 하는 스크래치 긁기 말랑한 배를 정성껏 조물거려주는 내 손 시원하고 깨끗한 갓 떠온 정수기 물 신중을 가하며 농부처럼 감자를 캐고 난 후의 청결한 화장실 약간은 까슬까슬한 발매트 '저길 들어가긴 하네..'라고 생각되는 작은 택배박스 침대와 이불 사이의 자그마한 틈 속 여행 '까까주까?' 하고 간드러진 집사의 목소리 현란한 손놀림으로 기어이 연 서랍 속 파헤치기 놀이 구석에 몰래 숨어있다가 방에서 나오는 집사 놀라게 하고 도망가기 파릇하고 싱싱하고 아삭한 캣 글.. 2022. 10. 5.
나의 고양이에게 #13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세 번째 내 고양이의 나이 듦이 슬퍼질 때가 있다. 30~40분씩 하던 놀이를 이젠 10분만 해도 엎드려 쉴 때, 3단 점프를 하며 올라가던 캣타워의 중간층을 애용할 때, 어릴 적 아팠단 후유증이 나이 들어 하나씩 나타나며 면역력이 약해질 때,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것보다 품에 안겨있기를 더 좋아할 때, 하지만 그런 슬픈 나이 듦이 좋을 때도 있다. 자신에게 위험이 되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알아낼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행동해줄 때. 나와의 유대감이 점점 더 깊어짐을 느낄 때, 나의 손길을 기꺼이 환영하며 정말 편하게 쉴 때, 여전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쌀 때. 어쩌면 다른 건 둘째치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제일이다. 앞으로 그것만이라도.. 2022. 10. 1.
나의 고양이에게 #12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두 번째 고양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왜 잘 자고 있는 집사 명치 위를 굳이 밟고 지나가는지 (가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한 번 씩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게 은근 사람 표정하고 닮아 보이는 것 (혹시 안에 다른 존재가 들어있는 건가..) 열심히 그루밍하다 갑자기 멈춰서 혀를 내민 채로 멍 때리고 있다던지 얌전히 식빵 굽다가 '오로롱!' 하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싫어하는 걸 하려고 하면 깊은 체념의 한숨을 쉬고 (고양이가 진짜 한숨을 쉬다니..) 점점 사람처럼 잠을 잔다. (이제는 대자로 자는 게 더 편할 걸까..?) 아무래도 고양이들보다 사람과 오래 살다 보니 점점 사람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엉뚱한 모습들을 보고.. 2022. 9. 26.
나의 고양이에게 #11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한 번째 나는 너의 작은 배려가 사랑스럽다. 과자를 입에 넣어줄 때 이빨에 힘을 빼고 살짝 깨물어 먹을 때 자기 전 살며시 옆에 앉아 내가 잘 준비를 다 마치길 기다릴 때 내 손이 너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면 쓰다듬기 좋게 고개를 기울여줄 때 쭈욱 들어 올려 내 어깨에 착 얹으면 얌전히 등 뒤로 앞발을 늘어뜨려 편안히 기댈 때 아주 작은 소리로 날 부르길래 '그랬어?'하고 대답해주면 만족스럽게 누워 다시 잠을 청할 때 이런 모든 때가 너를 더 애틋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유일한 고양이 '하나'가 11살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산 시간보다 앞으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이 더 적겠구나..'라는 생각. 그때부.. 2022. 9. 23.
나의 고양이에게 #10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열 번째 나의 시선 프레임 한편에 늘 있는 것 쭉 뻗은 꼬리, 세모난 귀,, 작지만 통통한 발, 두드리고 싶은 엉덩이 항상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머무르는 너의 부분들은 나의 풍경의 마지막 퍼즐처럼 빈틈없이 채워준다 밥을 먹을 때, 머리를 말릴 때, TV를 볼 때, 책을 읽을 때도 지구 곁을 일정하게 도는 달처럼 내 곁에 머물러주는 너로 인해 나의 일상은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지는 거겠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유일한 고양이 '하나'가 11살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산 시간보다 앞으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이 더 적겠구나..'라는 생각. 그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서 여기에 내 고양이 '하나'의 흔적을..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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