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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책 리뷰

[책 리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한강 / 한국 시 / 고통의 언어로 영혼의 존재찾기 / 삶과 죽음의 경계

by 나비서재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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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오 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작은표지

* 제목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지은이 : 한강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키워드 : 파격, 고통과 침묵, 생과 죽음, 경계
* 장르 : 한국 시
* 만족도 : ★★★★
* 한줄평 : 부서진 영혼을 이어 붙이는 새빨갛고 뜨거운 피를 닮은 언어집


[책 리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한강 시집 / 한국 시 /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부서진 영혼의 존재 찾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큰표지

작가 소개 : 한강
1970년에 테어나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침묵의 그림에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게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뜨겁거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 - 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이다.

 

 
한강
직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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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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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사이트

어쩌다 보니 한강 작가의 소설보다 시집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2022년 50권 읽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부족함 감성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책이다. 작가의 첫 시집이니 만큼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깨워 줄지 기대해보며 읽어보기로 한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의 첫인상은 낯설음이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시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어들이 나열되어있어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언어였다. 피, 혀, 신체 장기들을 앞세워 표현하는 삶이 가진 고통에 대한 고백은 그 크기가 큰만큼 슬픔이 극대화되어 다가왔다. 

책 소개에 '인간의 언어를 통한 영혼의 소생 가능성'이라는 글이 적혀있는데, 초반에 읽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긴가민가했다. 언어가 어떤 식으로 영혼을 되살린다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사실 그만 읽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기왕 읽기도 한 거 끝까지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다시 책을 펼쳤다.

한강 시집 - 어느날 나의 살은

 

시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의 무언가가 있어 보였고, 그 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언어들이 담겨있었다. 더불어 하나의 생명이 탄생되었을 때,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이루어졌음에 대한 아이러니와 생과 죽음은 마주 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피가 흐르는 눈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의 괴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해본다. 영혼이 부서질 만큼의 큰 절망을 겪고도 일상을 살아가는 것, 떠넘기듯 부여받은 생을 억지로 이어나가야 하는 부담감도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가는 인연과 생의 순간들을 자신은 그저 기억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할 삶의 이유를 찾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생의 무의미함 속 생생하게 느껴지는 뜨겁고 빨간 피의 역동적인 흐름을 통해 자신이 다시 한번 살아있음에 왠지 모를 원망스러움까지도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한강 시집 - 피 흐르는 눈3

 

분명 첫인상은 별로였건만 어느새 몰입하여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마치 시 속의 신체가 내 것인 것 마냥 눈과 혀, 심장,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를 함께 느끼며 읽다 보니 점점 더 빠져들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마지막 시를 넘기고 나니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시집에 대한 제삼자의 해설이 첨부되어 있었다. 인상 깊은 시의 구절들을 선택해 만약 한강 작가의 시점에서 본다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을지 예상해본 글을 보며 내용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읽어보니 처음 읽었던 때와는 확실히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내가 느낀 것과 다른 부분들도 있었다. 같은 글을 보더라도 각자의 생각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의미라 생각하기에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더라도 나만의 느낌을 가져가기로 한다.

한강 시집 - 눈물이 찻아올 때

 

한강 작가는 언어를 유일하게 사용하는 인간이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잃어버린 영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 영혼이 다시금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도.

책을 덮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만약,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되는 경험으로 영혼을 잃어 부서지는 내가 있다.
하지만 내 몸은 뜨겁게 뛰고 생이 흘러넘친다는 것을 온몸의 장기들을 통해 느낀다면 나는 그런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 아니면 그럼에도 살아있음에 안심하게 될까?

왠지 아직은 답하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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