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맑다 못해 청명하던 지난 주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가을과의 데이트를 강행했다.
이렇게 좋은 날, 사무실에만 앉아있기엔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그래서 이번 가을 나들이 장소로 점찍은 곳은 바로 '대구 수목원'.
이용료도 무료라고 하니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대구 수목원
위치 : 대구 달서구 화암로 342
운영 : 9월~4월 - 09:00~18:00 / 5월~8월 - 08:00~19:00
전화번호 : 053-803-7270
https://www.daegu.go.kr/cts/index.do?menu_id=00000952&servletPath=%2Fcts
이용안내
이용안내 | 대구광역시 분야별 문화&관광&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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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무료라고 해서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대구 수목원 입구길부터 내 마음은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처럼 기분 좋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많이 걷기 위해 준비도 단단히 하고 나왔다. 제일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르막을 오르는 데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이래서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면 제일 먼저 넓은 분수 광장을 만날 수 있다. 귀엽게 포즈 잡고 있는 토피어리 작품은 사람들의 사진 세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었다. 누가 만드셨는지 몰라도 손재주가 대단하신 듯.
중앙 분수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화단에는 수수와 예쁘게 만개한 꽃들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보고 있어도 좋아서 몇 바퀴 빙빙 돌면서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리고 '규화목'이라는 신기한 나무도 만났다. 이산화탄소가 땅속에 묻힌 나무의 조직 속에 침투하여 굳어진 화학석이라고 한다. 외형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직접 만져보면 돌처럼 단단해서 굉장히 신기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가는 것뿐인데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오신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와 나무들의 신기한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산꼬리풀, 공작단풍, 큰 도둑놈의 갈고리 (나중에 그냥 도둑놈의 갈고리도 있더라), 왜모시풀 등등. 모양에 딱 맞는 이름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킥킥댔다.
그중 대망의 1위는 '뽀뽀나무!' 나는 이런 나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바나나와 망고, 파인애플이 섞인 맛이 나는 열매가 열린다니. 과연 뽀뽀라는 이름에 걸맞게 열매도 달콤한가 보다.
대구 수목원의 가장자리길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나무데크길로 만들어져 있다. 사람들과 북적이며 걷고 싶지 않다면 올라갈 때 데크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개를 한껏 꺾게 만드는 대나무숲도 만날 수 있다. 다만 뱀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무조건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나중엔 땅을 더 많이 봤다. 뱀 무서워!
하늘 위로 시원하게 뻗어올라 간 대나무를 바라보니 왠지 내 마음도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런 곳에서 숨바꼭질하면 재밌겠다'라는 실없는 생각도 했다. 역시 밖에 나오니 엉뚱한 생각이 더 잘난다.
수목원 길 끝 쪽에 다다르면 조선시대에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방지원도라는 연못이 나온다. 네모난 연못인 '방지'는 땅을, 그 속에 둥근 섬인 '원도'는 하늘을 상징한다는 '천원지방설'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구불구불하고 굴곡진 물도랑인 '곡수거'도 있다. 이 곡수거에 물을 흘려 술잔을 띄우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한수를 지어 읊는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역시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도 서바이벌을 즐겼던 모양이다.
붉게 물든 단풍의 물결을 볼 순 없었지만 크게 아쉽지 않았다. 그 공백이 다양한 나무들과 꽃 그리고 풍경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니까.
테마에 맞는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열대 과일원, 종교 관련 식물원, 선인장·다육 식물원 등 평소 볼 수 없는 생태계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양이 많아 이곳은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대구 수목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시원한 인공 폭포가 나를 반긴다. 어디서 새소리가 많이 나나 했더니 폭포 제일 윗 물에서 새들이 목욕한다고 한가득 모여있던 거였다.
2시간 넘게 걸어 다니느라 살짝 땀이 났었는데 시원하게 물을 튀겨가며 발랄하게 목욕하는 새들을 보니 어찌 그리 부럽던지. 그때만큼은 나도 새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바쁘다는 이유로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 만큼 대구 수목원은 볼거리도 쉴 곳도 많은 곳이었다. 날씨도 너무 좋아서 걷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역시 자연은 좋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난 가을냄새를 들이마시는 것도, 노랗게 붉게 물들어진 나뭇잎과 열매들을 보는 것도, 아무것도 얽매이는 것 없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것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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