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주말 아침은 환한 햇살로 기득 하다.
어김없이 커피를 사러 간다는 핑계로 아침 산책에 나섰다.
가벼운 반팔차림으로 밖을 나서는 순간
"아~ 시원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살짝 서늘한 정도의 바람이 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며 이제 막 가을이 도착했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눅눅했던 여름의 공기도 한풀 꺾였다. 더운 여름을 잘 이겨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가을이 기대되는 주말 아침이다.
가을을 기분 좋게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쁘게 화단을 꾸며놓으신 분들의 노고에 늘 감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한 번 더 웃을 수 있어 행복하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 꼭 거쳐 거야 하는 이 길을 참 좋아한다.
마치 힘든 하루를 마치고 온 나를 고생했다며 위로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이번 주말 아침 산책에서 나를 반긴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보랏빛으로 가득 물든 안젤로니아와 일일초다. 싱그러운 녹색 잎줄기와 보랏빛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고 사진 찍는 내내 생각했다.
안젤로니아
과 : 현삼과
원산지 : 멕시코, 서인도제도
꽃말 : 천사의 얼굴
무성하게 자라며 덤불이 많은 식물. 입술 모양처럼 생긴 작은 꽃들은 일 년 동안 자유롭게 핀다. 좁고 긴 타원형의 잎은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이고 끈적거리는 선모가 있다. 정원에 장식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출처 : 트리인포 식물도감, picture this
일일초
쌍떡잎식물 용담목 협죽도과의 한해살이풀
원산지 : 마다가스카르, 자바섬, 브라질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으로서 끝이 둔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윤이 나며 주맥을 따라 흰 무늬가 있다. 꽃은 7~0월에 피고 지름 2.5~3.5cm이며, 빛깔은 자주색, 흰색, 빨간색 등이다. 꽃이 매일 피기 때문에 일일초라고 한다.
출처 : 두산백과 두피디아
이 날따라 좀 피곤해서 그냥 커피만 사고 올라갈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발길을 돌리지 않아 참 다행이다. 안 그랬음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꽃들을 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평소 보기 힘든 피안화를 발견했다. 처음 발견한 피안화는 덩그러니 혼자 피어있어 '이를 어쩌나..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안화는 누가 심지 않으면 피지 않는다고 하던데 여기에 한 송이만 심어둔 걸까? 혼자라고 기죽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왠지 짠하기도 하면서 또 의젓해 보였다.
꽃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 본 피안화는 참 오묘하고 신기하게 생겼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을 통해 피안화에 독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무덤가에 심었다는 것도 이젠 안다.
역시 알고 보면 같은 꽃도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살짝 코너를 돌고 나왔더니 여기엔 피안화 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럴 거면 아까 그 한 송이도 여기에 심어주지.. 왜 쟤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런 게 운명이라면 운명인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 예쁜 결실을 모두 맺었으니 어떤 피안화든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나도 내가 서있는 자리와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송이의 꽃에서 배운다.
사실 이번 아침 산책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평소엔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있어 그냥 지나쳤던 산딸나무다.
나는 왜 산딸나무인가 했다. 나무의 전체 모습을 보지 했었던 탓에 그저 '설마 딸기나 열리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딸기는 나무에서 자라지 않기에 의문만 남긴 채로 시간은 흘렀다.
이번에야 말로 산딸나무의 본모습을 알게 됐다. 나무에 열린 열매가 너무 신기해서 뭘까 싶어 검색해 봤더니 '딸기를 닮은 열매가 난다'라는 이유로 이름이 산딸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 열매는 맛도 있어 새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는 걸 보면 딸기만큼이나 맛있는 열매인가 보다. 하나 따서 보고 싶었지만 공동 산책로에 있는 나무인 만큼 손을 대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 만져보진 않았다.
대신 요리조리 다각도로 보면서 '신기하네. 진짜 동그란 딸기 같네..'라는 말을 연발하며 계속 기웃거렸다. 이젠 가야지 하고 카페로 가다가 다시 돌아와 열매를 한 번 더 보고 갈 정도로 산딸나무의 첫 만남은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산딸나무를 찍는데 세상에 하늘이 너무 이쁜 게 아닌가. 시원한 바람이 쓸고 간 자리엔 청명한 하늘만이 남아 나의 피곤함까지 싹 날려주었다.
또 한 번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순간이다. 잠깐만 하려던 산책은 어느새 수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따스한 햇살, 가을 냄새 가득한 바람 그리고 자신만의 결실을 맺는 꽃과 나무를 보며 나도 다시 힘을 내어보자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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