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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일상이야기

찬란하고도 쓸쓸한 아파트

by 나비서재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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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와는 다른 듯한 풍경에 고개를 돌렸더니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에 '우와'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던 터라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볼 만큼 이제 막 완공을 마친 아파트가 내뿜는 빛은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바라보길 한참이나 지났을 때였다.

모든 불이 다 들어와 있는 아파트 모습
밤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들의 모습이 그저 밝게만 보이지 않는건 왜인지..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니 또 드는 생각은 씁쓸함이었다.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은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 이제 조금만 지나면 빛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텅 비어버린 쓸쓸한 아파트가 되겠지.

찬란하고도 쓸쓸한 아파트. 
생각의 끝에 다다라서 내려진 결론이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는 이렇게나 넘쳐나는데, 정작 집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나 또한 10년 넘게 잘 지내던 집이 재개발 승인이 났다는 이유로 부랴부랴 이사를 가게 된 케이스였다. 갑작스레 한 이사 때문인지 새 집에 적응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어색한 걸 보면 원치 않은 이사가 가져오는 영향이 꽤 큰 거 같다.

그래도 빨리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불어나는 아파트 때문에 집값은 폭등했고 저렴하다 싶은 집은 이미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도 운이 따라줄진 장담하기 힘든 현실이다.

앞다투어 높이경쟁을 하듯 올라가는 수십 채의 아파트들. 과연 저기에서 제 집체럼 살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집을 사지 못해 2~3년씩 새 집을 찾아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것을 보니 이건 현대판 유목민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제쯤 맘 편히 지낼 집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엔 세상엔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은데 말이다.

그저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 또 다른 곳에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도 아주 잠깐 찬란함을 뽐내다 금세 빛을 잃겠지.

그렇게 켜졌다 꺼질 집이 아니라 따뜻함을 간직하며 오랫동안 빛을 내는 집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피곤에 지친 몸을 편히 기대어 쉬며 다가올 내일을 기분 좋게 맞이할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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