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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기록/나의 고양이에게

나의 고양이에게 #23 - 집사가 보내는 편지 / 고양이 일기

by 나비서재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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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양이 '하나'에게 보내는 집사의 편지 스물세 번째

 

나의 고양이에게 23
왜 굳이 이 좁은 테이블 위에 올라와 불편하게 앉아있는 거냐고.. 엉덩이 좀 치워주면 안될까..?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얻는 기쁨과는 별개로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들이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찾아오는 알레르기 증상들
재채기, 콧물, 눈물, 간지러움.
얼굴 한가득 묻어 절로 찡그려지는 털들.
검은 옷을 좋아하는 나에겐 분신 같은 돌돌이로
집 나서기 전 항상 털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운 시간낭비

언제나 조용히 내 뒤를 쫓는 작은 몸을 밟지 않기 위해
늘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하는 한 발짝. 
기분이 좋다가도 느닷없이 성질내는 고양이의 비위 맞추기.
피곤해도 만족할 때까지 혼신의 몸짓으로 
실감 나게 장난감 흔들며 놀아줘야 하는 격렬한 놀이시간.

혼자 잘 놀다가도 내가 뭐 하려고만 하면! 꼭 그럴 때만!
귀신같이 달려와 온몸으로 방해하는 고양이 물리치기 대결.
잊을만하면 대형사고 쳐서 오랜만에 쉬고 있는 날 일으켜
대청소하게 만드는 사고뭉치 대마왕보며 참을 인자 새기기.

이렇게 매일 털과의 전쟁을 치르고,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피곤함과 귀찮음에도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건 
그게 너라서, 너이기 때문에.

열 가지 중 아홉 가지가 힘듦일지라도
너라는 하나의 이유로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었던 날들.

비록 앞으로도 내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것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해도
너만 곁에 있어준다면 그 무엇이 문제일까.
넌 그저 지금처럼 가끔 사고도 치고, 
일을 방해하고, 내 발 뒤를 쫓아오면서 
날 바라봐주면 돼.

그거면 되는 거야 난. 그거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유일한 고양이 '하나'가 11살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산 시간보다 앞으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이 더 적겠구나..'라는 생각.
그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래서 여기에 내 고양이 '하나'의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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