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빼곡히 적힌 문장들이 빠짐없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책 전체를 직접 써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일명 통필사 또는 전체필사라 불리는 이 행위는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나머지 내 것으로 흡수해 버리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추운 겨울이기도 하고 전체필사를 하고 싶은 책도 겨울느낌이 많이 묻어나기에 그에 어울릴 잉크를 사용하여 필사를 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잉크는 한국 파이롯트의 만년필용 잉크 이로시주쿠다.
[한국 파이롯트 만년필용 잉크 이로시주쿠 동장군 ]
만년필 관련 제품 판매로 유명한 '베스트펜'에서 50ml 16,300원으로 구입했다.
베스트펜
역삼동 로드샵, 만년필, 볼펜, 노트, 다이어리 전문몰, 몽블랑 정품 공식판매업체
www.bestpen.kr
잉크 색상 상세페이지를 보면 이런 색까지 표현할 수 있다니..라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신비롭고 예쁜 잉크의 종류가 나와있다. 선택 장애가 있는 나는 다양한 색상 중에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에 빠졌지만, 처음에 한 생각대로 겨울이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동장군'으로 결정 내렸다.
이름도 동장군이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가.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의인화한 표현이니만큼 더욱 내가 원하던 잉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색상들에게 붙여진 이름들도 귀엽고 센스 넘쳐서 벌써부터 다음에 뭘 사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길 며칠, 만년필 노트와 함께 받은 잉크를 열어본 순간 드는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크다는 거였다.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아 가성비도 좋은 것 같았다.
물건을 사면 냄새부터 맡는 습관이 있는 나였기에 뚜껑을 열고 코를 들이대 킁킁거리니 의외로 아무 냄새가 안 난다. 먹물이나 물감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냄새가 없으니 좀 아쉬운 느낌이다. 나만 그런가..?
플래티넘 센츄리에 잉크를 가득 채운뒤 닙에 남은 잉크를 살살 닦아보니 확실히 흑색보다는 농도도 연하고 푸른 끼가 도는 차가운 느낌이 드는 색이다. 그러데이션처럼 퍼지는 잉크의 번짐을 보면서 이 걸로 필사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만년필이 M닙이다 보니 굵게 표현할 수 있어서 잉크의 농도가 더 잘 보인다. 차가운 짙은 회색의 느낌을 풍기는 이로시주쿠 동장군은 획의 끝부분에 잉크가 더 잘 모여 보이기 때문에 굵은 닙을 쓰거나 딥 펜을 사용하면 그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전체필사를 하고자 하는 책인 '시와 산책'의 한 구절을 적어 보았다. 실제 색상은 더 이쁜데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어 아쉽다. 확 눈에 띄는 색상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내가 하려는 필사에 맞는 잉크를 사용하는 게 더 나을 거 같기에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다음엔 블링블링한 색을 써봐야지..
필사를 위해 잉크를 새로 사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지만 책과 잘 어울리는 색깔로 써 내려갈 기분은 생각만 해도 좋을 거 같다. 이렇게 나의 필사 생활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좋은 아이템들이 많다는 게 너무 좋다. 베스트펜에는 이로시주쿠 잉크 말고도 다양한 잉크가 있으니 필사 취미를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걸 추천한다. 단, 충동구매로 과소비를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만년필 컨버터 방식의 잉크 충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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