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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책 리뷰

[책 리뷰] 창밖을 본다 - 신해욱 / 읽음에 비로소 글이 된다는 것 / 空冊이 의미가 되는 순간들

by 나비서재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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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에 의해 비로소 이 책은 씌어진다.
읽은 자리에 백색의 글자가 드러날 것이다.
텅 빈 프레임 속에 펼쳐지는 우연히 아름다운 풍경들

창밖을 본다 - 작은표지
창밖을 본다 - 신해욱  출처:YES24

* 제목 : 창밖을 본다
* 지은이 : 신해욱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키워드 : 창밖, 空冊, 완독가,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
* 장르 : 한국 에세이
* 한줄평 : 백색의 空冊 위에 씌여진 백색의 글자들


창밖을 본다 - 신해욱 큰 표지
창밖을 본다 - 신해욱  /  문학과지성사

작가소개 :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간결한 배치」,「생물성」, 소설「해몽전파사」, 산문집 「일인용 책」 등.

 

 

어쩌면 미완성이 될 '창밖을 본다'의 책리뷰

그런 책이 있다. 
왠지 자꾸 눈에 밟히는데 사면 읽지 않을 것만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이 그랬다. 

산책 삼아 놀러 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딱히 살만한 책을 못 골라 그만 갈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고개를 돌리는 시선의 끝에서 발견하게 된 책이 바로 '창밖을 본다'였다.

책을 꺼내 빠르게 한 번 훑어봤지만 딱히 뭔가 있어 보이는 내용이 없다. 금세 흥미를 잃어버려 책을 제자리를 꽂아둔 후 책장을 빙 둘러 출구로 향했다.

돌아 나온 책장의 끝을 지나가려는 순간. 어라.. 아까 봤던 책이 더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하나 더 꽂혀있는 게 아닌가. 짧게나마 한 번 눈도장을 찍은 탓인지 두 번 째는 생각이란 걸 하기도 전에 책을 찾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책을 꺼내 이번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았지만 역시나 크게 끌리지가 않으니 어쩐다...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이.. 어차피 중고서점인데 싼 가격에 책 한 권 산다는 마음으로 결국 구매를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바로 읽어 보려고 했지만 역시 잘 읽히지 않는 바람에 '창밖을 본다'는 결국 다른 책들 사이에 끼어버리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 그냥 사지 말걸...

책을 샀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후 열흘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저번 주 토요일인 4일에 조카의 돌잔치가 있어 김해에 내려가게 된 날이었다. 오랜만의 긴 외출이라 부랴부랴 짐을 챙기는데 그 순간 갑자기 잊고 있던 책이 생각났다. 맞다. 바로 '창밖을 본다'였다.

왜 갑자기 그 책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여유가 없던 터라 급하게 책과 연필만 챙겨 들고 나와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타보는 새마을호 기차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주말이라 꽉 차있는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게 어색해 좌석에 등을 기대며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있기 오분쯤 되었을까. 그제야 책을 가져온 것이 생각났다. 시간이나 때우자는 기분으로 책을 꺼내 들었다.

사실 대중교통을 타면 대부분의 시간을 수면으로 보내는 편인데,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기도 했고, 멀미가 심해 핸드폰을 보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 그렇게나 안 읽히던 책이 왜 이리 잘 읽히는지. 괜히 샀다며 후회를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잘 읽힌다는 게 너무 황당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다.

이 기분이 뭔지 알아내고 싶어 잠시 책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장소와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 나서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다시 살펴봤다.

'아.. ' 하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 하나. 어쩌면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읽히기 위해 그렇게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하는 다소 황당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책 속의 작가는 출판사업에 실패한 친구가 건네준 값비싼 백색 空冊에 아무것도 쓰지 못해 고뇌하며 창밖을 보고. 나는 시속 100km 이상으로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한 번씩 바라보며 이 책을 읽고 있고.

내 옆좌석엔 온통 까만 옷을 입은 남자가 까만 털실로 전투적인 뜨개질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의 만남. 묘하게 들어맞는 이 찰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꼭 사야만 했던 게 아닐까.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마치 운명의 장난 같은 우연이 만든 장소에서 비로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때야 말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황당하기까지 한 생각이 들었던 거였다.

그만큼 내가 평소엔 하지 않았을 행동들의 결과로 인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기분을 느꼈다는 것에서 왠지 모를 짜릿함이 솟아올랐던 거고. 

처음 책을 발견했을 때 읽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문구를 다시금 살펴봤다.

읽음에 의해 비로소 이 책은 씌어진다.
읽은 자리에 백색의 글자가 드러날 것이다.



혹시 이 책은 차음부터, 친구에게 멋진 글을 써 보여주고 싶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해 펴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책상 위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던 그 空冊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 한 권의 空冊.

이제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다소 난해하고 이야기의 연결이 어색해 읽기 힘들었었나 보다.

사실 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나는 완독가보단 애독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완독가가 대한 작가의 의견과 나와의 생각엔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까닭은, 그때 내가 느꼈던 순간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또 언제 느껴보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기록으로나마 남겨두고 싶어졌다.

'창밖을 본다'는 시작도 하지 못한 글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멋지게 한 권의 空冊을 완성해 무기력에 빠진 친구에게 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났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장면들. 

그냥 남이 써 놓은 글만 읽고 싶은 마음과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완벽한 글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의 충돌. 어설픈 글을 쓸 바엔 쓰지 않는 단호함과 어떤 글이든 쓰고 싶어 하는 나약함이 뒤엉켜있다.

그런 감정들의 시작과 끝엔 어김없이 '창밖을 본다'라는 문장이 지문처럼 남아있다.
작가는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리고 어디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까.

정확해지고 싶다.
젖은 낙엽의 색과 냄새를. 마른나무의 선울.
지금 이 시간이 흐르는 속도와 공기의 느낌을 빼놓지 않고 살려내고 싶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숲의 언어가 부족하다.
- 창밖을 본다.  p.73 - 

 

책을 다 읽지 못한 와중에 궁금증이 생겼다.
반복되는 '창밖을 본다'라는 문장이 대체 몇 번 나오는 건지.

마지막 장까지 넘겨보며 세어본 결과 총 27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세어보고 싶었다. 책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완독 하기 위해 복잡한 책을 골라 읽는 작가의 완독력에 잠시 홀리기라도 했나 보다.

이쯤 되니 작가가 친구를 위해 백색의 空冊을 완성했는지 못했는지는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 듯하다. 이미 나에겐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으로 남게 되었으니, 이 책의 소임은 그걸로 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니 그냥 궁금한 채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을듯하다. 

기억나는 것은
읽음과 접속되어 있는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다. 
- 창밖을 본다.  p.47 -

 

지금까지 다소 난해한 내 생각들을 적어놓았는데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정말 칭찬해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책을 읽지 않고 이 글만 본다면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힘들 내용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황하게 내가 느꼈던 순간들을 적어놓은 이유는 하나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어떤 물건, 혹은 어떤 사람이 주변에 있다. 평소라면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치 그 물건이나 사람으로 인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 맞춰 완성된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 기분을 다른 이들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거다.

어떤 것이든 꼭 필요한 순간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계기가 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그렇기에 버려지는 것 없이, 방치되는 것 없이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존재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봤으면 하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다.

다시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맞이하게 될 그 순간을 위해 구석진 곳도 잘 들여다보아야겠다. 자신이 빛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보석 같은 空冊을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에게도 '읽음으로써 글이 될 백색의 空冊'을 꼭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도 아마 그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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